중요한 토목공사의 많은 부분을 외국인 기술자에게 맡긴 메이지시대 초기에, 비와호 수로 공사는 근대적 토목기술을 배운 다나베 사쿠로의 지휘하에 측량, 설계 및 시공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일본 최초의 근대적 대토목사업입니다. 물론 토목공사용 중기 등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업을 인력으로 진행하고, 대량의 벽돌을 조달하기 위해 자영 벽돌공장을 건설했습니다.
전등이 보급되지 않았던 당시, 어두운 터널 안에서 작업하기 위해 사용된 휴대용 램프. 철제이며 끝부분을 바위에 찔러서 걸어 둘 수가 있다.
벽돌 원료에 필요한 흙은 근처에서 채취했다. 공장 굴뚝은 그 후8개로 늘어났다.
다나베 사쿠로는 당시 일본 최장의 제1터널에서, 터널공사 공법으로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수갱(샤프트) 공법’을 도입했습니다. 지표로부터 수직으로 수직굴을 파 내려가, 도달점에서 옆으로 파면서 나아가는 공법으로 시공기간의 단축과 함께 터널 내부에 신선한 공기와 일광을 들여놓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원래 광산에서 사용된 방법인데 건설당시 일본에서 가장 길었던 제1터널 공사의 터널 굴착 시 일본에서 처음으로 응용되었습니다. 제1수갱의 깊이는 약 47m에 이르는데, 곳곳에 족장을 설치하고, 수갱 위의 인력권상기를 이용하여 사람이나 물건을 상하로 이동시켰습니다. ‘비와호 수로선’을 타면 이 수직갱도를 터널 내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굴착 개시 당초의 수갱 상부의 모습.
수갱에 사람이 출입하거나 물을 퍼내기 위해 거대한 인력권양기를 이용했으며 용수가 많은 경우에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가동시켰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전력이 세계적으로 새로운 에너지로 실용화되었습니다. 메이지 21(1888)년, 다카기 분페이와 함께 수력이용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 각지를 시찰하는 과정에서 아스펜 수력발전소를 견학한 다나베 사쿠로는 전기의 실용성과 장래성을 확신했습니다. 귀국 후 다나베 일행이 발전소 건설을 제안한 결과, 수로 이용목적에 수력발전이 추가되었으며, 메이지 24(1891)년에 일본 최초의 사업용 수력발전소인 제1기 게아게 발전소가 건설되었습니다.
메이지 45(1912)년, 게아게 정수장이 급수를 시작하면서 교토에서 수도의 역사가 시작했습니다. 그 정수방식으로 채용된 것이 ‘급속 여과’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화학변화를 이용하여 오염을 모아 효율적으로 물의 흐름을 정화하는 방식으로 지금으로서는 일반적이지만, 이 방식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곳이 게아게 정수장였습니다. 그 이유는 가쵸잔 산중턱에 정수장을 건설한 관계로 완속 여과에 필요한 넓은 여과지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교토시의 인구 약 50만명 중 급수인구는 약 4만명, 하루 최대 급수량은 약 3만㎥였는데 오늘날 하루 최대 급수량은 약 50만㎥ 이상이며, 생활을 지탱하는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제1수로 제3터널의 동쪽에 놓인 히노오카 제11호 다리. 언뜻 보면 색다를 것이 없는 다리지만 실은 ‘일본 초기 철근 콘크리트 교량’ 합니다. 메이지 36(1903)년에 다나베 사쿠로의 지도하에 만들어졌습니다. 곁에 석비가 있는데 ‘일본 최초의 철근 혼응토(콘크리트)교’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철근 콘크리트교는 전국적으로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기술사적으로 매우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수진 공식공사 필휴』는 다나베 사쿠로가 편집한 일본 최초의 토목공학 핸드북입니다. 비와호 수로 공사를 위하여 전국에서 모여든 기술자들의 대부분은 서양에서 도입된 새로운 토목공법의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나베는 야간에 스스로 강사가 되어 그들에게 토목공법의 강습을 진행하고, 낮에는 현장에서 지휘했습니다. 이 책은 당시의 교재를 정리한 것인데 측량에 필요한 공식이나 화약 보존방법 등 토목공학의 기초적인 내용을 해설하고 있습니다. ‘수진’이란 호주머니나 소매 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만한 작은 책의 총칭으로, 현장에 나갈 때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포켓북입니다.